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산 왕조 (문단 편집) === 기타 병과 === [[파일:external/www.iranpoliticsclub.net/Sassanian%20Persian%20Portable%20Catapult%20Fireball%20Attack%20&%20Siege%20of%20a%20Roman%20Castle%204%20AD.jpg]] 상술했다시피 수백년 동안 고착된 로마-이란 간 국경지대에는 강력한 요새들이 들어서 있었으며, 거점 도시들도 성벽으로 방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양국의 전쟁시 공성전이 자주 일어났다. 따라서 사산 왕조는 로마 못지않은 다양한 공성 무기와 공성 기술을 발전시켰다. 공성전에 별 관심이 없던 파르티아와 달리 당장 시조인 아르다시르 1세부터 로마식 공성 장비를 도입했다는 설명이 있다. 공성 무기를 이용한 공격 외에도 대규모의 땅굴 파기 혹은 토산 쌓기도 이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대규모로 징집된 보병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일:external/iranpoliticsclub.net/Sassanian%20Poshtiqban,%20Kurdish%20Pishmarga%20Savar,%20Mobad%20&%20War%20Elephants%20363%20AD.jpg]] 사산 왕조 군대의 또다른 중요한 특징으로는 [[코끼리]]를 전쟁에 적극 동원했다는 점이 있다.[* 로마와의 전쟁 때는 코끼리가 700마리 정도 동원되었다고 한다.] 파르티아는 물론 사산 왕조 전과 후를 통틀어 이란 지역의 국가이면서 전투 코끼리를 적극적으로 동원한 나라는 [[셀레우코스 왕조]]밖에 없다. 이란 지역에는 코끼리가 살지 않기 때문에 코끼리들은 대부분 [[인도]]에서 수입되었으며, 위에 나무로 된 망루를 올리고 2~3명의 궁병이 탔다. 셀레우코스 시대와 달리 코끼리에 따로 갑옷을 입히지는 않은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코끼리에 갑옷을 입혔다는 것이 밝혀졌다. 사산조를 끝으로 중동에서는 더이상 전투 코끼리가 동원되지 않았다. 해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란이 당시 이란 본토와 [[페르시아 만]]을 끼고 마주보는 아라비아 반도 북부를 지배했고, 6세기경에는 아라비아 남부의 [[예멘]]까지 정복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해군 활동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만 기록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정확한 양상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단 알려진 바에 따른다면 사산 제국의 해군 사령관은 나브베드(Navbed)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주로 죄수들을 해군에 채용해 생각만큼 해군력은 강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이다. 반면 제국 서부의 경우 지중해로 가는 길이 동로마에 의해 완전히 막혀 있었기 때문에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을 건너다니는 배들 말고는 해군 비슷한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7세기 초 동로마를 완전히 코너로 몰아넣었을 때,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위해 임시로 배를 만들었지만 동로마 해군의 공격에 패하면서 상륙에 실패하게 된다. 그밖에 사산 왕조 군사들의 복식을 현대에 와서 재현하거나 복원한 그림들을 보고 싶다면, 밑의 링크를 참조할 것. --군기를 든 기병 장교들의 군복이 굉장히 화려하다...--[[https://cafe.daum.net/historywar/Nwo/2788|#]]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